여행 상품을 검색하다 보면 가끔 이런 벽에 부딪힙니다.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이, 상품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 상품은 저희에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문의부터 여행까지 넉 달, 일정 하나가 만들어진 실제 기록입니다.
조건이 명확한 문의가 도착했습니다
출발을 넉 달 앞둔 어느 날 들어온 문의였습니다. 4박 5일, 역사교사 여덟 명. 시안의 고대·중세·근현대사, 그리고 옌안의 근현대사 유적.
옌안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가 활동했던 지역입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는 교과서 속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밟는 답사지인 셈입니다. 하지만 옌안이 들어간 여행 상품은 시중에 없습니다. 병마용과 화청지 중심의 시안 관광 상품이 전부니까요.
첫 상담에서 선생님들이 물은 것도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희망한 분야를 잘 아시는 가이드가 있을까요?"
노쇼핑 희망, 그리고 자비로 가는 여행이니 가성비까지. 원하는 것이 분명한 팀이었습니다.
열다섯 곳 넘는 리스트, 전부 현지에서 확인했습니다
며칠 뒤, 선생님들이 먼저 리스트를 보내왔습니다. 몇 해 전 시안을 다녀온 멤버의 기록을 바탕으로 팀에서 논의한 방문지들이었습니다. 병마용갱과 진시황릉 같은 대표 유적부터, 일반 관광 상품에는 없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 기념공원비, 팔로군 서안판사처 기념관 같은 근현대사 사적지까지.
리스트를 받은 저희가 한 일은 목록을 일정표에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한 곳 한 곳의 현재 상태를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광복군 기념공원비는 예약해야 개방되는 곳이라는 것, 비림박물관은 리모델링 중이라 일부만 관람할 수 있다는 것까지. 그 확인이 끝난 뒤에야 견적서를 보냈습니다.
이동이 걱정이라는 한마디에, 일정을 다시 짰습니다
견적서가 나온 뒤에도 일정은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일정에서 옌안은 전용차량으로 왕복하는 구성이었습니다. 옌안 시내 유적 사이 이동에 차량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도 5시간의 이동 시간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저희는 대안을 다시 짰습니다. 서안-옌안 구간은 고속열차로, 옌안 안에서는 현지 차량으로.
이동 시간이 줄었는데 경비도 함께 내려갔습니다. 가성비를 고려해달라던 첫 요청은 이렇게 일정이 바뀔 때마다 다시 지켜졌습니다.
방문지도 바뀌었습니다. 리모델링 중인 비림박물관은 볼 수 있는 게 적다는 팀 내 의견에 따라 빼기로 했고, 저희는 동선과 휴관일을 고려해 대안으로 섬서고고박물관을 추천했습니다. 관광 코스에는 잘 들어가지 않지만, 역사 선생님들이라면 가보시면 좋을 곳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여덟 명 단독 일정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수십 명이 함께 움직이는 단체였다면, 한 팀의 사정으로 일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었을 겁니다.
출발 2주 전, 저희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저희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순간은 견적서가 아니라 이 제안입니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 본부터, 이범석 거주지터, OSS 훈련지. 도로 확장과 건물 편입으로 이미 사라진 곳도 있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주민들도 연세가 많아지면서 점점 잊혀가는 유적들입니다. 상품 목록에는 실릴 수 없는 곳들이지만, 역사교사 여덟 명의 답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쩌면 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방문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발을 앞두고 저희가 먼저 여쭤봤습니다. 선생님들의 답은 짧았습니다.
"네 좋습니다! 추진해 주세요."
저희는 그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관광 목적이신 분들께는 이런 곳을 추천하기가 어려운데, 수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은 시안이라도 누가 가느냐에 따라 넣어야 할 곳이 다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일정을 만들 때, 상품에 없던 곳이 여행의 중심이 됩니다.
여행이 끝난 뒤, 선생님들이 남긴 후기
여행을 마친 강*섭 선생님이 남겨주신 후기 원문입니다.
이 후기에서 저희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문장은 여섯 번째입니다.
"이봉춘 가이드님이 아니면 가볼 수 없는 조선의용대의 유적들."
상품이 없어서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못 가는 곳이었던 겁니다. 현지 전문가와 일정을 함께 만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곳까지 여행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여행이 말해주는 것
이 기록을 공개하는 이유는 "요모에서는 옌안도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행 준비의 순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보통 상품 목록을 먼저 열고, 그 안에서 고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여행이 아니라, 파는 여행 중에 덜 아쉬운 것을 고르고 있게 됩니다.
이 선생님들은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어떤 가이드가 필요한지, 예산은 어디까지인지를 먼저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중에 없던 여행이 일정표가 되었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일정은 더 이 팀다워졌습니다. 이동 수단이 바뀌고, 방문지가 바뀌고, 마지막에는 현지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장소까지 더해졌습니다.
가고 싶은 여행을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일정으로 답하겠습니다.